[갈대상자] 래리 킹의 반세기 방송 경력
CNN의 래리 킹 라이브를 맡아서 25년간 방송인으로 인터뷰어로 활동해 온 래리 킹이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앞으로 래리 킹 라이브는 중단해도 특별 프로그램 제작에는 참여할 것이라고 합니다. 1957년에 시작해서 53년에 걸친 전문 인터뷰어로서의 활동을 마무리 한 것입니다. 1933년 오스트리아 이민자 아버지와 러시아계 어머니에게 태어난 래리 킹의 원래 이름은 자이거였습니다. 철저한 종교적인 유대인 가정에서 성장했지만 그는 공부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업 전선에 뛰어 들었지만 어릴 때부터의 꿈이었던 라디오 방송 활동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뒤늦게 라디오 방송 붐을 타고 있었던 플로리다로 무조건 내려갔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이라는 학력으로 방송국마다 문을 두드렸습니다. 겨우 청소하고 심부름하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근한 아나운서를 대신해서 방송을 하게 되었습니다. 24살 나이에 방송에 뛰어들 때부터 전문적인 인터뷰어로서 실력을 다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름대로 방송인으로서 나락에 떨어지는 고통도 맛보면서 꾸준히 인터뷰 중심의 방송으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결국 1985년 뉴스 전문 케이블 방송으로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던 CNN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심야 인터뷰 토크 쇼를 시작해서 25년간 진행을 한 것입니다. 래리 킹의 인터뷰는 나름대로 아주 독특한 면이 있습니다. 직설적입니다. 아주 솔직합니다. 때로는 자신의 정치적인 견해를 드러내는 데 망설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래리 킹의 인터뷰는 누구와도 대립하지 않는 스타일로 유명합니다. 논란의 한 복판에 있는 인물들이 편안한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 찾는 편안한 인터뷰어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견해를 진지하게 전달하고 싶어 하는 인사들이 직접적이고 솔직한 스타일이 불편한데도 불구하고 래리 킹을 찾아서 최초의 인터뷰를 하곤 했습니다. 어투와 얼굴 표정에 이르기까지 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직접적이고 솔직한 답변을 요구하지만 결코 대립각을 세우지 않는 스타일 때문입니다. 질병과 싸우기도 하고 8번에 걸친 결혼 편력에도 불구하고 갖가지 재능으로 가득 찬 미국의 언론계에서 새로운 영역을 창조하여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 낸 인물입니다. 그 핵심에는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는 예술의 경지에 다른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한국은 왕조 통치에서 한 세대 만에 근대에 접어들고 한 세대 만에 다른 나라가 수백 년에 이룬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한 가지 일에 반세기 동안 집중하면서 성취를 일군 경우를 보기가 어렵습니다. 종종 더 나은 기회를 얻기 위해서 일을 바꾸고, 직장을 바꿉니다. 자신의 영역에서 조금 성공했다고 금방 방송인이 연예인이 되기도 하고, 사업가가 교수가 되기도 하고, 의사가 예술가가 되기도 합니다. 의미 있고 열매 맺는 인생은 좋은 기회를 얻는데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일이라도 자신의 열정을 유지하고 단순한 기술이 예술의 경지에 이르도록 갈고 닦는 노력이 있다면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성취를 이룰 수 있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얼마나 오래 동안 했는지요? 50년을 계속할 수 있을까요? 지금하고 있는 일을 보다 더 잘 할 수 있을까요?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열정을 쏟고 완벽을 추구할 때 작은 일에 충성한 사람에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 듣고 더 큰 일을 맡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